미국 대통령(President) 제도를 확립한 조지 워싱턴 업적, 명언, 일화, 휴일, 사망 원인

미국 대통령 제도가 확립되는 데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공이 컸습니다.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가장 사랑 받는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업적, 그가 남긴 명언, 휴일인 워싱턴 데이까지. 그가 그가 미국 역사에서 왜 이리 중요한 인물인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지 워싱턴 주요 업적

미국이라는 나라가 설립되기까지는 많은 인물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독립과 건국에 공헌한 인물들을 13개주 대표 정치인들을 건국의 아버지들 (Foundatation Fathers) 라고 하고요.
이 중에 가장 많은 공헌한 인물이 바로 조지 워싱턴 입니다.

미국 독립 전쟁 (American Revolution)

미국 독립 전쟁(American Revolusion)은 1775년부터 1783년까지 8년간 벌어진 영국과 북미 대륙의 13개 식민지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조지 워싱턴은 미국 대륙군 (Continental Army)의 총사령관을 맡아 전투를 지휘하고 참여 했습니다.

당시 민병대 위주로 구성된 미국 대륙군을 이끌고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갖고 있던 영국군을 상대로 한 미국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에 미국 독립 전쟁은 조지 워싱턴의 가장 큰 업적중 하나로 뽑힙니다.

미국 독립 전쟁 관련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전쟁의 배경에는 영국과 북미 대륙 식민지 사이의 조세 문제가 있는데요.
보스턴 차사건이 발단이 되어 영국이 북미 대륙에 군대를 파병하고,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폐지 및 영국 정부의 직할 통치 선언하면서 양측의 긴장감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렉싱턴에서 발생한 양측의 교전을 독립 전쟁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1773년 보스턴 차사건(Boston Tea Party)
  • 1775년 렉싱턴 콩코드 (Battle of Lexington and Concord) 전투
  • 1775년 벙커힐 전투 (Battle of Bunker Hill)
  • 1774년 제 1차 대륙 회의
  • 1776년 7월 4일 독립 선언
  • 1776년 트렌턴 전투 (Battle of Trenton)
  • 1777년 프린스턴 전투 (Battle of Prinston)
  • 1777년 새러토가 전투 (Battles of Saratoga)
  • 1781년 체사피크 만 해전 (Battle of the Chesapeake)
  • 1781년 요크타운 전투 (Battle of Yorktown)

미국 독립 기념일 기원

전쟁이 시작되고 1년여가 지난 후 1776년 7월 4일, 미국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를 제정하게 됩니다.

미국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 는 프랑스 인권 선언, 권리장전과 더불어서 자연법/인권 사상의 발전 과정상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서 중 하나 입니다.

미국 영화를 보거나 프로농구등 스포츠를 보면 76이라는 숫자가 자주 사용되는데요. 오버워치의 솔저 76, 폴아웃 76, NBA 팀인 필라델피아 76ers 등에서 사용된 76이라는 숫자가 바로 독립선언서가 제정된 1776년에서 따온 숫자 입니다. 북미권에서는 ‘정의’를 상징하는 숫자라고 하네요.

또한 매년 7월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로 공휴일이자 증시 휴장일 입니다.

독립 전쟁의 상징 –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미국 독립 전쟁중에 가장 유명한 전투는 트렌턴 전투 입니다.

델라웨어 강을 건너 기습 공격을 통해 큰 승리를 거둔 조지 워싱턴의 리더십이 돋보였던 전투로, 트렌턴 전투는 수세에 몰려있던 미국 독립군이 전세를 뒤집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전투 입니다.

에마누엘 로이체 작,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어 프린스턴 전투까지 승리로 이끌면서 유럽의 프랑스, 네델란드, 스페인등이 연합군에 합류하여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781년 요크타운 전투를 끝으로 미국 독립 전쟁이 마무리 되었고, 1783년 파리 조약으로 미국은 독립을 인정 받았습니다.

헌법 (U.S constitution)

1787년 워싱턴은 헌법 제정 회의의 의장으로, 최초의 미국 헌법을 제정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13개의 주로 구성되어있었는데요. 주 단위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미국 합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묶을 수 있는 연방 차원의 법 제정의 필요성을 대두되어, 워싱턴은 버지니아 주 대표이자 헌법 제정 회의 의장으로 참석하여 헌법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총 7개조로 이루어진 미국 헌법 초안은 그해 12월 7일 델라웨어를 시작으로, 1790년 로드 아일랜드를 마지막으로 13개에서 비준이 되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대통령

한편 새롭게 탄생한 연방은 ‘영국 국왕을 대체할 통치자’가 필요했습니다. 1789년 오랜 미국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륙군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만장일치로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되었는데요.

워싱턴은 미국 최초의 대통령(President)를 역임하면서 ‘대통령’ 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인물이자, 8년 동안의 임기를 마친 후 평화롭게 임기를 물려줌으로서 오늘날의 대통령제 표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워싱턴은 1792년 재선에 성공해서 8년간 대통령 직을 맡았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임기를 마무리하던 시기에도 그의 인기와 영향력이 막대해서 3번째 임기를 맡아 달라고 요청이 많았지만, 그는 한 사람에게 너무나 큰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의 뒤를 이어 부통령이였던 존 애덤스가 차기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헌법에 대통령 중임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조지 워싱턴이 보여준 솔선수범 하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임기는 2번까지는 하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미국 증시 휴장 워싱턴 탄생일

워싱턴 탄생일(Washington’s Birthday)는 1879년 부터 지정된 공휴일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기념하는 휴일 입니다.

최초에는 실제 워싱턴의 생일인 1732년 2월 22일과 같은 날인 매년 2월 22일로 지정했다가, 나중에 매년 2월 세번째 월요일을 휴일로 하는 요일제 공휴일로 바뀌었습니다.

세번째 월요일의 날짜가 매번 바뀌는 만큼, 지금은 미국 역대 대통령(President)을 기념하는 대통령의 날 (Presidents’ Day)로 불리우고요. 학교나 관공서 제외하면 대부분 휴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 증시 공식 휴장일 입니다.

조지 워싱턴 일화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조지 워싱턴 위인전의 벚나무(cherry tree)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정직” 의 중요성에 대한 일화로 어린 조지 워싱턴이 “아빠, 거짓말 할 수 없어요. 제가 나무를 찍었어요”라고 말해 용서를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의 위인전을 펴낸 목사가 만든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실제로 2008년 조지 워싱턴재단의 데이비드 무라카(Muraca) 고고학 국장이 이끄는 발굴팀이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진 버지니아주 프레데릭스버그 인근의 페리 팜에서 지난 7년간 발굴 작업을 벌인 끝에 워싱턴이 6세부터 20세 초반까지 살았던 집터를 찾았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벚나무 혹은 벚나무를 자르는 데 사용되었다는 도끼 자루는 흔적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전히 미국 초등학교용 서적에 자주 인용되고 있고, 조지 워싱턴 관련 대학 및 시설에는 벚나무가 곧잘 사용되곤 한다고 해요.

조지 워싱턴 사망 원인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단 2년만인 1799년에 폐렴과 인후염을 치료 하던 중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방혈치료라는 것이 널리 적용되던 시기였습니다.
의료 지식 수준이 낮았던 당시에는 질병의 원인 체내 혈액의 불균형이라고 생각했고, 병으로 더러워진 피를 빼내면 깨끗한 새 피가 만들어져 치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이런 치료 방법은 방혈 개념을 처음 치료에 도입한 히포크라테스 이후 무려 천년 가까이 남용 되었다고 하니, 의학 기술의 발전이 다른 과학 기술 발전에 비해 얼마나 더딘지 보여주는 단면인 것 같습니다.

당시 조지 워싱턴은 치료를 위해 2.35리터나 되는 양의 피를 뽑았고, 결국 과다 출혈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대해 요즘과 같은 이해와 의술이 있었다면, 조지 워싱턴은 더 오랫동안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명언

It is better to offer no excuse than a bad one.
나쁜 변명을 하느니 차라리 변명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낫다.

Honesty is always the best policy.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방책이다.

We should not look back unless it is to derive useful lessons from past errors, and for the purpose of profiting by dearly bought experience.
과거의 실수를 통해 유용한 교훈을 얻거나 경험이라는 귀한 가치를 통해 이익을 얻을 목적이 아니라면 절대 과거를 돌아보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To be prepared for war is one of the most effective means of preserving peace.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It is far better to be alone, than to be in bad company
나쁜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Laws made by common consent must not be trampled on by individuals.
공통의 합의에 의해 정의된 법이 절대 개인에 의해서 짓밟혀서는 안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에 또 다른 컨텐츠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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